동하 이야기/동하 떠드는 야그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의 이모저모

東河 2010. 3. 8. 10:39

조선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의 이모저모
  

조선의 건국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 고려시대와는 다른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성문 법전의 편찬이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즉위 후 내린 교서에서 ‘의장(儀章)과 법제는 고려의 것을 따르되, 법률을 정하여 모두 율문(律文)에 따라 처리함으로써 고려의 폐단을 밟지 않을 것’을 천명하였다. 이러한 방침은 역대 왕에게 그대로 계승되었고, 세조대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본격적인 편찬 사업에 들어가 성종 때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1. 『경국대전』을 만들기까지
  1394년(태조 3)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태조에게 올렸다. 『조선경국전』은 치전(治典), 부전(賦典), 예전(禮典), 정전(政典), 헌전(憲典), 공전(工典)의 6전 체제로 구성되었다. 태종 시대에는 『원육전』 3권과 『속육전』 3권을 만들었으며, 1433년(세종 15)에는 황희 등이 세종의 재가를 얻어 『신찬경제육전』을 편찬하였다. 세조는 전대의 모든 법령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통일적인 법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법전 편찬에 착수하였다. 1457년(세조 3)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둔 것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처음 육전 중 호전과 형전을 차례로 완성하였으나, 세조의 죽음으로 『경국대전』의 시행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성종 역시 법전 편찬에 주력하여, 1482년(성종 13) 전체적인 수정 작업을 완료하고, 1485년 1월부터 그 시행에 들어갔다.
  서거정은 『경국대전』을 올리면서 쓴 서문(序文)에서, “우리 조종(祖宗)의 심후하신 인덕(仁德)과 크고 아름다운 규범이 훌륭한 전장(典章)에 퍼져 있으니, 이것은 『경제육전』의 원전ㆍ속전과 등록(謄錄)이며 또 여러 번 내리신 교지가 있어서 법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 이제 짐작손익(斟酌損益)하고 산정회통(刪定會通)하여 만대의 성법을 만들고자 하셨다.”고 하여 『경국대전』은 전대 법전의 성과를 이어 완성된 법전임을 강조하였다. 『경국대전』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영구히 지킬 법전을 완벽하게 만들려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었다.

 

 2. 『경국대전』의 기본 구성
  『경국대전』에는 총 319개의 법조문이 이전, 호전, 예전, 형전, 병전, 공전의 6전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吏典)은 내명부와 외명부, 중앙과 지방의 관제, 관리의 임면에 관한 규정 등을 기록하고 있다. 첫 부분에 빈(정1품) 이하 귀인, 소의, 숙의, 소용 등 후궁들의 품계와 상궁(정5품) 등 궁중의 전문직 여성들의 품계가 기록된 점이 흥미롭다. 여성들의 품계가 첫 부분에 기록된 것은 이들이 왕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전은 세금제도와 관리들의 녹봉, 토지, 가옥, 노비 매매 등에 관한 사항으로 오늘날 경제 부처에서 관장하는 사항들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예전은 과거제도, 외교, 제례, 상복, 혼인 등에 관한 사항으로 오늘날 문화체육관광부나 외교통상부의 추진 업무와 밀접히 관련된다. 법무부의 소관 사항에 해당하는 형벌, 재판, 노비, 재산상속법에 관한 규정은 형전에, 국방, 군사에 관한 사항은 병전에, 도로, 교통, 건축, 도량형 등 건축과 산업 전반에 관한 사항은 공전에 각각 순서대로 기록되었다. 『경국대전』이 육전 체제로 구성된 것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중앙과 지방의 정치구조와 행정조직이 모두 6조 체제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사회는 중앙의 6조를 비롯하여 지방의 수령 산하에도 이방, 호방, 예방, 병방, 형방, 공방 등 6방을 두었는데, 법전 또한 이러한 행정 조직의 체계에 맞춰 규정함으로써 정치와 행정의 효율성을 꾀하였다.
  『경국대전』의 완성은 법치주의를 표방한 조선의 통치 체계가 안정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조선왕조에서는 『경국대전』이후 『속대전』(영조), 『대전통편』(정조), 『대전회통』(고종) 등 3차례의 법전 편찬이 더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전회통』에 이르기까지 『경국대전』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조선의 기본 법전 『경국대전』의 체제가 그만큼 짜임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경국대전』_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3. 『경국대전』에 담겨진 내용들
  『경국대전』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조항들을 살펴보자.「형전」의 공노비에 관한 부분 중에는 노비의 출산 휴가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띈다. ‘입역(入役)하고 있는 비(婢)가 산기(産期)에 당하여 한 달, 산후에 50일 휴가를 준다. 그 남편은 산후에 휴가 15일을 준다’는 규정이 있다. 매매 대상인 노비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한 것이다.「예전」의 ‘제과(諸科)’에는 과거응시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죄를 범하여 영구히 임용할 수 없게 된 자, 장리(贓吏)의 아들, 재가(再嫁)하여 실행(失行)한 부녀의 아들 및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 생원, 진사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중에는 장리(贓吏:뇌물을 받은 관리)의 자손들이 포함된 것이 주목된다. 부정부패를 한 사람은 그 후손조차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정부패에 엄격하게 대처한 의지가 엿보인다.
  과거응시의 초시 합격자의 경우 인구비례로 지역별 합격자수를 배정한 지역별 쿼터제도가 있었다.「예전」의 문과 초시(初試) 규정에는 240인의 합격자 수에 대하여, ‘관시(館試:성균관에서 학습하고 있는 생원, 진사 중에서 뽑는 시험) 50인, 한성시(漢城試) 40인 이외에 향시(鄕市)로 경기 30인, 충청도와 전라도 각 25인, 경상도 30인, 강원도ㆍ평안도 각 15인, 황해도ㆍ영안도(함경도) 각 10인 등을 뽑을 것’을 규정하였다. 초시 240명의 선발에서 지역별 안배를 하고, 복시(覆試) 합격자 33명의 선발은 능력에 의거함으로써 지역 안배와 능력의 조화를 꾀한 것이다. 생원과 진사 시험에도 이 방침은 적용되었다. 초시 합격자 700명에 대해서는 지역 안배를, 복시는 성적순으로 뽑았다. 『경국대전』 관리 선발 규정은 지역차별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오늘날 상당히 음미할 만한 부분이다.
  「호전」에는 세무비리 공무원에 대한 재산 몰수 규정도 있다. 즉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는 쌀이나 곡식 등을 받아 중간에 가로 챈 자는 비록 본인이 죽어도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 재산이 있으면 강제로 받아낼 수 있게 했다.「예전」에는 정해진 복식을 어길 경우 그에 해당하는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금과 은 같은 사치스러운 물품을 사용하거나 당상관 이하의 자녀가 혼인할 때 사라능단 같은 수입 비단을 사용하면 장(杖) 80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전」에는 ‘분경금지법’이 주목된다. ‘분경(奔競)’이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다툰다는 말로서「형전」의 ‘금제(禁制)’ 조항에는 ‘분경하는 자는 장 100대, 유배 3천리에 처한다’고 규정하여 권문세가에 드나들면서 정치적 로비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국가 문서에 대한 철저한 보관을 규정한 내용도 있다.「예전」의 ‘장문서(臧文書)’ 항목에는, ‘춘추관의 시정기(時政記)와 승정원 문서는 매 3년마다 인쇄하여 당해 관아와 의정부 및 사고(史庫)에 보관한다. 무릇 인쇄된 서책은 따로 융문루(隆文樓)와 융무루(隆武樓)에 보관하고 또 의정부ㆍ홍문관ㆍ성균관ㆍ춘추관과 여러 도의 으뜸이 되는 고을에 각 1건씩을 보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가 기록물 보존의 전통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졌으며, 결국 이것이 현재까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세계기록유산 7건을 보유한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국대전』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표방한 조선이라는 국가의 헌법으로서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많은 한계점도 있다. 과부의 재가를 금지한 것이나, 서얼 자손에 대한 영구한 과거 금지 조치, 노비를「형전(刑典)」에 포함시켜 처벌 규정에만 주력한 것 등 시대적 한계성을 보이는 내용들도 다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의 관점에서 볼 때도 나름의 합리성을 보인 규정들이 상당히 존재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쓴이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주요저서
-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일지사, 2000
-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램덤하우스, 2003
-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 함께, 2007
- 이지함 평전, 글항아리, 2008
-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새문사, 2009 등